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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의 역사 ==
== 남양의 역사 ==
=== 삼국시기 ===
=== 삼국시기 ===
남양도호부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는 다음과 같이 연혁을 전하고 있다.<br/> “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인데, 신라가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쳤고, 고려가 옛 이름[唐城]으로 복구하여, 현종(顯宗) 무오에 수주(水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인주(仁州)에 옮겨 붙였으며,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렬왕(忠烈王) 16년 경인에 고을 사람 홍다구(洪茶丘)가 원나라에 벼슬하여 정동행성 우승(右丞)이 되었으므로 지익주사(知益州事)로 승격되고, 뒤에 또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34년 무신에 또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2년 경술에 모든 목(牧)을 없앰에 따라 남양부(南陽府)로 강등되어,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남양도호부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는 다음과 같이 연혁을 전하고 있다.“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인데, 신라가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쳤고, 고려가 옛 이름[唐城]으로 복구하여, 현종(顯宗) 무오에 수주(水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인주(仁州)에 옮겨 붙였으며,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렬왕(忠烈王) 16년 경인에 고을 사람 홍다구(洪茶丘)가 원나라에 벼슬하여 정동행성 우승(右丞)이 되었으므로 지익주사(知益州事)로 승격되고, 뒤에 또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34년 무신에 또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2년 경술에 모든 목(牧)을 없앰에 따라 남양부(南陽府)로 강등되어,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f>[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f>


=== 고려 ===
=== 고려 ===

2024년 9월 30일 (월) 14:12 판

남양의 역사

삼국시기

남양도호부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는 다음과 같이 연혁을 전하고 있다.“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인데, 신라가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쳤고, 고려가 옛 이름[唐城]으로 복구하여, 현종(顯宗) 무오에 수주(水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인주(仁州)에 옮겨 붙였으며,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렬왕(忠烈王) 16년 경인에 고을 사람 홍다구(洪茶丘)가 원나라에 벼슬하여 정동행성 우승(右丞)이 되었으므로 지익주사(知益州事)로 승격되고, 뒤에 또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34년 무신에 또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2년 경술에 모든 목(牧)을 없앰에 따라 남양부(南陽府)로 강등되어,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1]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현대

남양의 지명

행정지명

  • 동탄
    • A, B, C, D
  • 남양
    • A, B, C, D
  • 향남
    • A, B, C, D

산천

도로

  1.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