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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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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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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0일 (월) 14:03 판

남양의 역사

삼국시기

남양도호부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는 다음과 같이 연혁을 전하고 있다.
“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인데, 신라가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쳤고, 고려가 옛 이름[唐城]으로 복구하여, 현종(顯宗) 무오에 수주(水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인주(仁州)에 옮겨 붙였으며,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렬왕(忠烈王) 16년 경인에 고을 사람 홍다구(洪茶丘)가 원나라에 벼슬하여 정동행성 우승(右丞)이 되었으므로 지익주사(知益州事)로 승격되고, 뒤에 또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34년 무신에 또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2년 경술에 모든 목(牧)을 없앰에 따라 남양부(南陽府)로 강등되어,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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